한철규 한솔제지 대표는 정통 '한솔맨'으로 불린다. 한 대표는 1986년 한솔제지 전신인 전주제지에 입사한 이후 37여 년간 한솔그룹에 몸 담아왔다. 그는 한솔제지 인사팀장, 뉴욕법인장 및 한솔홀딩스 인사팀장, 한솔개발(오크밸리리조트) 대표를 거쳐 한솔홀딩스 부사장에 오른 뒤, 지난 2020년 한솔개발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그의 경영 키워드는 '친환경'으로 꼽힌다. 내년 60주년을 맞아 100년 지속가능경영을 추진하기 위해 이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 대표는 '2023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재활용 종이 원료를 사용한 친환경 제품을 통해 자원 순환에 기여하고 있다"며 "산업용지는 재생용 종이 자원 사용률을 90% 이상 유지 중"이라고 강조했다. 또 "향후 인쇄용지 및 감열지까지 재생용 종이자원 사용량을 높여 자원순환 측면에서 업계의 모범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본업과 通하는 친환경 신사업 박차
한솔제지는 올해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이와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기존 사업에 대한 역량 강화와 함께, 새로운 영역에 대한 발굴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대표는 "제지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면서 유망한 영역으로 확장 가능한 신규 사업 진출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정부의 친환경 정책 추진 및 규제 강화 기회 등을 활용해 국내 바이오 가스화 사업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친환경 종이소재 및 패키징 사업 역량 강화를 통해 기존 사업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성 높은 시장에 집중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인쇄용지와 감열지 사업은 수익성 높은 시장에 집중해 매출과 수익성을 높이고, 경쟁사 증설로 업황이 악화된 동남아 산업용지 시장에서는 수익성 위주로 운영하겠다"며 "그 외 지역에서는 대체 시장과 고객을 추가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자신감은 이미 친환경 산업·인쇄용지·감열지 등에서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솔제지는 일찍이 종이를 친환경 패키징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종이연포장재 '프로테고(Protego)'와 친환경 PE-Free 종이용기 '테라바스(Terravas)'가 대표적이다.
프로테고는 수분·가스 차단성 기술을 적용해 만든 특수 종이포장재로, 기존에 구현하기 어려웠던 고차단성을 갖춰 식품 등 내용물의 보존성을 높여준다. 지난달 프로테고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녹색기술이 적용된 녹색기술제품' 인증을 받았다. 이는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의 배출을 최소화하면서도 품질·성능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제품에 부여된다. 사용 후 종이로 분리배출이 가능한 프로테고는 기존 제품 대비 탄소배출량을 39% 줄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솔제지는 "식품·유통·제약·프랜차이즈 기업과 협업해 프로테고 적용을 확대하고 있고, 일본 등 해외 진출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한솔제지가 자체 개발한 수용성 코팅액을 적용한 친환경 종이용기 테라바스는 '자연을 담는 용기'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 종이류 분리배출 가능은 물론 우수한 내수성과 내열성이 특장점이다. 특히 컵, 빨대 등 다양한 용도에도 활용 가능해 대형 프랜차이즈나 식품업계의 지속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최대 85%까지 줄인 '종이실링트레이' 신제품을 선보였다. 플라스틱의 유용성과 종이의 재활용 가능성을 결합한 제품으로, 기존 플라스틱 트레이를 국제삼림관리협의회(FSC)로부터 인증받은 친환경 종이로 대체했다. 식품이 직접 닿는 부분에는 식품용 전용 필름을 사용하는데, 이 필름의 밀폐 기능은 육류처럼 신선도 유지가 필수인 신선 제품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한솔제지는 나아가 종이원료인 펄프에서 친환경 신소재를 개발 중이다. 셀룰로오스 미세섬유 '듀라클'은 펄프를 가공 및 미세화해 만든 친환경 소재로, 한솔제지 중앙연구소가 1979년 국내 최초로 설립되면서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회사는 2018년 셀룰로오스 미세섬유 생산 설비를 도입해 상용화를 가속하고 있다. 이에 화장품, 페인트, 코팅, 우레탄, 고무, 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타 기업과 협업을 진행 중이다. 한솔제지는 "듀라클은 광학적으로 투명하며, 가볍고 강도가 높다"며 "여기에 목재에서 유래한 소재로 생분해성을 갖추고 있어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소재"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44.8%(2023년 11월 기준)로 시장 점유율 1위를 점하고 있는 산업용지 부문에서 △90% 이상 재활용 종이자원을 함유한 'Hi-Q IV' △100% 천연 펄프를 사용해 무형광 처리된 'Hi-Q AB 플러스' △인쇄용지에 사용되는 교과서 전용 친환경 재생용지 '그린교과서지' △종이영수증 등에 사용되는 감열지 'Green RC', 'PF RC' 등을 개발했다.
친환경 협력 프로젝트 또한 진행 중이다. 한솔제지는 올해 1월 서울시와 함께 '어린이집 종이팩 자원순환'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서울시 내 4400여곳의 어린이집에서 배출되는 종이팩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거된 종이팩은 어린이용 학용품, 고급 인쇄용지, 패키지용 종이 등으로 다시 제작된다. 지난해 한솔제지는 종이팩 재활용 설비에 70억원을 투자, 원료의 투입부터 제품 생산까지 모든 공정에서 안정성을 확보한 바 있다. 한 대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재활용을 실천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종이팩의 재활용률을 높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대표는 직접 플라스틱 사용량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3월 한솔제지 유튜브에 공개된 '바이바이 플라스틱 챌린지' 영상에서 그는 플라스틱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상기시키고 생활 속 실천을 통해 사용량을 줄여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바이바이 플라스틱 챌린지는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착한 소비 실천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환경부가 지난해 8월부터 추진해온 범국민 실천운동이다.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으로 업무혁신 속도...업계 전망도 '초록불'
한솔제지는 최근 '빅데이터 플랫폼'을 업계 처음으로 구축하며 디지털전환(DX)을 통한 업무혁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솔제지는 이를 통해 장항·대전·천안·신탄진 등 각 공장 내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및 스팀 사용량, 설비온도 등 10만여개 의 데이터 소스를 단일 플랫폼에 통합해 관리할 수 있게 됐다. 각 담당자들은 클라우드로 수집된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시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도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회사 측은 "분석된 데이터를 통해 설비운영을 최적화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면서 "언제 어디서나 창고별 재고 및 생산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업무량을 예측하고 의사결정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솔제지는 지난 3월 메가존클라우드와 손잡고 생성형 인공지능(AI) '젠AI360'을 적용한 사내 AI 영업일지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앞으로도 새로운 비즈니스가치를 창출하는 디지털기술을 적극 도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업계 전망도 밝다. 올해 1분기 실적 서프라이즈를 낸 한솔제지에 인쇄용지 부문 호조 및 산업용지 부문의 경쟁 완화도 점쳐지면서 초록불이 켜졌다는 분석이다.
김민철 교보증권 연구원은 지난 10일 "한솔제지의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337% 증가한 340억원으로 시장 기대치(240억원) 대비 큰 폭으로 상회했다"며 "펄프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는 가운데 제품가격 인상으로 마진스프레드가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특히 북미지역 선거 등으로 인쇄용지 부문의 성장이 영업이익에 60%의 기여를 했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나아가 "인쇄용지 부문의 호조 지속과 산업용지(백판지) 부문의 경쟁 완화가 기대된다"며 "인쇄용지 부문이 수익성을 견인할 것으로 보는데, 북미지역 및 주요국 선거 등으로 이런 추세는 당분간 지속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펄프가격 역시 안정화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비즈트리뷴=이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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