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원단 위생용지(두루마리 휴지·핸드타월·키친타월·냅킨 등)의 '국산 둔갑' 문제가 대두되자 조달청이 위생용지의 원산지 특별 관리를 검토하고 있다. 공공조달시장이 먼저 혼란 해소에 서는 양상이다. 국산 원단업계는 민간 유통업계에도 "원산지 관리에 나서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13일 조달청 관계자는 "현재로서 위생용지가 '원산지 명시방법 특례' 항목에 들어가지 않지만 추가해서 (원산지를)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수요기관(공공기관)이 원산지를 참고해 구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위생용지가 원산지 명시 특례에 포함되면 앞으로 조달시장에서 판매할 때 원단의 원산지를 명시해야 한다.
전날(12일) 국내 위생용지 원단 제조사 6곳은 수입원단으로 위생용지를 만드는 한국 그랜드 유니버셜 트레이딩(GUTK)과 아이티씨, 경동디앤에스, 한예지 등을 관세청에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이 수입 원단을 국내에서 단순 절단, 엠보싱, 포장만 해놓고 '국산'으로 속여 판매한다고 문제 삼았다. 관세청도 같은 문제로 GUTK와 광진산업 등을 지난달 말부터 단속하고 있다.
위생용지는 커다란 '원단'을 △절단 △엠보싱 △포장해 만든다. 대외무역법상 원단을 국내에서 가공했더라도 '단순가공'했다면 제품은 수입물품이 된다. 원단의 △절단 △포장은 대외무역관리규정상, △엠보싱은 2017년 관세청의 자체심의상 단순가공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절단과 엠보싱, 포장이 단순가공이 아니라 하더라도 산업통상자원부의 대외무역법 유권해석상 수입 위생용지는 한국산으로 판정할 수 없고, 제조국을 대한민국이라 표기할 때도 원산지는 병기해야 한다. 국내 원단업계들은 수입 원단을 사용했으면서 원산지·제조국을 대한민국이라 표기한 헬로 순수 3겹 도톰한 고급롤화장지 30m 등 제품명을 특정해 고발장에 적시했다.
고발당한 업체들은 표기 규정이 없다보니 발생한 문제로 소비자를 기만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소비자를 속이려 일부러 국산 표기를 한 것은 아니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위생용품 표시기준에 제조국, 원산지의 명확한 표기 규정이 없었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위생용품 표시기준엔 △제품명 △영업소 소재지 △사용 주의사항 등을 표기하라 할뿐 제조국, 원산지 표기는 별다른 규정이 없다. 이에 대외무역법을 따라야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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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업계가 체증한 '원산지 표기 위반' 화장지 제품들/그래픽=윤선정 |
이들이 고발에 나선 것은 수입원단의 범람으로 전에 없던 수준의 경영악화를 겪고 있어서다. 국내의 한 위생용지 원단 제조사 관계자는 "재고가 쌓여 한달에 닷새씩 공장을 못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체 관계자도 "벌써 1년 넘게 기계를 한달에 열흘 가까이 세워 둔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원단은 한해 60여만톤씩 소비된다. 이중 수입산 비중은 2015년 7.2%에서 지난해 24%로 늘었다. 수입산의 96%가 인도네시아 또는 중국산이다. 수입 원단은 최근 국산보다 25~50%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국내 산업은 우유팩, 종이컵을 재활용해 원가를 낮추는 식으로 대응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100% 새 펄프 화장지가 싼 가격에 들어오니 재활용 화장지의 수요가 감소하면서 점차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위생용지 원단은 제조기술의 터득이 어렵고, '장치산업'이라 불릴 만큼 생산설비가 거대해 관련 업계가 한번 고사하면 회복이 쉽지 않다. 실제로 대만은 중국산 저렴한 화장지 원단 때문에 관련 산업이 고사했는데 코로나19 당시 펄프 가격 급등으로 수입산 원단이 끊기자 극심한 화장지 품귀 현상을 겪었다. 이에 일각에선 국내에서도 원단업계가 고사하면 "향후 요소수보다 더한 화장지 품귀현상을 겪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국산 원단업계는 공공기관에 '국산품 구매'를 호소해왔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은 돕고 싶어도, 부실한 원산지 표기 탓에 무엇이 진짜 국산 위생용지인지 판단하기 어려워 손이 묶였다고 전해졌다. 조달청이 위생용지의 원산지 명시방법 특례 포함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와 별개로 한국제지연합회의 위생용지위원회도 이날 쿠팡과 네이버, 지마켓, 11번가, SSG닷컴, 신세계, 홈플러스 등 유통업계에 "원산지 표기 관리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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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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